더 이상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

글. 김종소리

그는 하루에 한 번 그 책에 손을 댔다. 이건 그에게 있어 반드시 지켜야 하는, 일종의 ‘의식’과도 같은 일이었다. 그는 이 의식을 매번 다른 형태로 수행했다. 표지 위에 쌓인 먼지를 부드럽게 쓸어내거나, 책장을 넘기다 아무 데서나 멈추고 잠시 읽거나, 얼굴을 향해 부채질하듯 책을 흔들며 냄새를 맡거나. 그는 자신의 동작이 자연스러워 보이도록 세심하게 연출했다. 어딘가 어색해 보이면 이런 의심을 품는 사람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혹시 만질 필요가 없는 책을 일부러 만지고 있는 것 아닐까? 그는 오랫동안 지켜온 이 의식을 아무한테도 들키고 싶지 않았다. 물론 그가 매일 책을 만진다는 사실을 누군가 알게 되더라도 문제 될 일은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이 의식의 존재를 눈치챈 누군가의 머릿속에 여러 질문이 떠오를 것이고, 이건 문제가 될 수도 있다. 도대체 왜 매일 책을 만지는 거지? 게다가 늘 저 책만 만지는 것 같은데? 꼭 저 책이어야만 하는 건가? 강박인가? 아니면 습관?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이 단순한 질문이 불씨가 되어 거대한 재앙을 불러올 수도 있다. 누군가가 그에게 묻는다. 근데 있잖아. 너 지금 들고 있는 책. 그거 왜 매일 만지는 거야? 대답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그냥 좀 신경이 쓰여서. 누군가는 그를 빤히 쳐다본다. 대답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되는 질문 같은 건 도대체 왜 하는 걸까? 사실 이 말에 담긴 저의는 대답하기 싫어도 하라는 것이다. ‘안 해도 된다’라는 말에 ‘하라’는 의미를 담다니. 저열하기 짝이 없다. 당연히 그는 대답하고 싶지 않다. 그 책과 관련한 것이라면 그게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그는 아무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다. 누군가는 묵묵부답인 그를 쳐다보고 있다. 그가 답하지 않는 한 영원히, 내일 지구의 종말이 찾아온다 하더라도 줄곧 그를 쳐다보고 있을 것만 같다. 정말이지 곤란하다. 이런 상황이 실제로 발생할 확률은 1퍼센트가 채 되지 않을 것이다. 망상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그는 이 조금의 가능성도 무시하지 않는다. 조심해서 나쁠 것 하나 없다. 그 자신이 죽거나 혹은 그 책이 소멸해 의식 자체가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 그러므로 당연히 이후에도 존재하지 않을 것, 가능하다면 이와 관련한 단 한 줄의 문장, 단 하나의 단어조차 기록되지 않음으로써 아예 존재하지 않던 게 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그가 진정으로 바라는 바였다. 하지만 아직 의식은 존재해야만 했다. 그는 죽지 않고 살아있었고, 그 책 역시 책상 한편에 쌓인 스무 권 남짓한 책들 위에 멀쩡하게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 책 아래 쌓인 책들은 새것은 아니지만 새것이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모두 그가 사놓고 읽지 않은 책이었다. 그는 주로 책을 사지 않고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는데, 그건 그가 반납일이 있어야만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마감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 이따금 도서관에 없는 책이나 인기가 많아 빌리기 어려운 책은 사기도 했는데 이상하게도 그런 책은 몇 쪽 훑어보고 말거나 많이 읽는다 해도 반을 넘기지 못하고 덮어버렸다. 마감이 없다는 이유로 영원히 읽히지 못할 운명을 부여받은 책은 그렇게 한 권 두 권 책상 한편에 모이기 시작했고, 결국 산처럼 높이 쌓였다. 사실상 책이라기보다 스스로 자라나는 오브제라고 볼 수 있었다. 그는 이걸 볼 때마다 팔까 고민하다가도 다시 읽고 싶어지면 어떡하지 생각하며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가 늘 외면하는 이 ‘새 책의 산’ 정상이 그 책의 자리였다. 그 책은 헌책이었다. 슬쩍 봐도 오래된 책이라고 바로 알아차릴 만한, 이어서, 너무 오래된 것 같은데? 대체 얼마나 오래된 건지 가늠도 못 하겠어, 찝찝해서 만지고 싶지도 않아, 같은 생각이 들 만큼 정말 오래된 책이었다. 그는 서가 가장 높은 칸에 책을 꽂아 넣었다. 굳이 이런 오래된 책을 빌릴 필요가 있을까? 그때 갑자기 신의 계시처럼 머릿속에 생각이 울려 퍼졌다. 빌려라. 이 책이야말로 네가 오늘 도서관에 온 이유다. 넌 이 책을 빌려야만 한다. 그는 다시 서가 꼭대기로 손을 뻗었다. 한 손으로 책을 꺼내 살며시 힘을 주자 책이 부드럽게 휘어졌다. 그는 책장을 넘기다 자신도 모르게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날개가 없고 두께가 얇아서 거추장스럽지 않은 표지에, 가볍고 부드러워 저절로 넘어가는 듯한 느낌을 주는 내지를 지닌, 그래서 한 손으로 쥐고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책. 그 책은 그가 좋아하는 책의 물성을 고스란히 지닌, 100퍼센트 그의 취향에 들어맞는 책이었다. 한 장 두 장 천천히 넘어가는 내지 위로 세로로 쓰인 글이 보였다. 군데군데 한자도 섞여 있었다. 오래된 걸 넘어서 이 정도면 시대착오적인데? 요즘 누가 세로쓰기를, 그것도 한자가 섞인 책을 읽어? 세로쓰기 이제 아무도 안 쓰잖아. 근데 왜지? 아마도 가로쓰기를 시작한 건 다른 나라와, 정확히는 서양이겠지만, 아무튼 그쪽과 양식을 통일하기 위해서였겠지? 그래야 소통이 편할 테니까. 근데 소설 같은 일반 책까지 전부 가로쓰기로 통일할 필요가 있었던 걸까? 그래야 효율적이잖아. 굳이 쓰기 방식을 여러 개 가지고 있을 필요가 있어? 하나만 있으면 되지. 비효율적이라는 이유로 천 년을 넘게 사용한 세로쓰기를 이렇게 쉽게 버린다고? 코 푼 휴지도 아니고. 그럴 거면 우리 말도 버리고 영어로 통일하지, 왜? 그게 효율적이잖아. 그만 해. 그래, 이 책은 시대착오적이야. 그래도 빌리자. 사실 이미 책이란 게 시대착오적이잖아. 요새 누가 책을 읽어. 안 그래? 그래. 빌리기 전에 조금만 읽어볼까? 그는 의자에 앉아 책을 펼쳤다. 코끝으로 곰팡내가 풍겨왔다. 그렇지 않아도 이 도서관은 ‘구 도서관’이라 불리는, 새로운 도서관이 지어진 후로 오래된 책을 보관하는 서고와 같은 역할을 하는, 그렇지만 서고와 달리 일반 열람실처럼 책을 진열해 둔, 그래서 안 그래도 이곳에 오면 항상 특유의 냄새가 나는데 어떤 이는 책 냄새라 부르며 좋아했고, 어떤 이는 퀴퀴하다며 손을 내저었다. 그는 이 냄새로 가득 찬 ‘구 도서관’을 좋아했다. 두툼한 콘크리트 기둥과 그 사이사이 빨간 벽돌로 쌓은 벽과 커다란 창문에 설치된 화려한 문양의 창살이, 문을 열고 들어섬과 동시에 느껴지는 서늘한 기운이, 계단 손잡이나 창틀 등 군데군데 자리 잡은 짙은 색의 반들거리는 원목이, 그리고 무엇보다도 시험 공부를 하기 위한 독서실이나 다름없는 ‘신 도서관’과는 달리 책을 읽고 대출하는 게 주목적인 사람이 주로 찾는다는 점이, 그래서 사람이 별로 없다는 점이 좋았다. 그가 이곳에서 가장 좋아하는 자리는 3층 열람실 끄트머리 책장에 바짝 붙여 벽을 바라보고 놓인 나무 의자였다. 마치 누군가에게 벽 보기 벌을 주기 위해서 그 자리에 두었다가 벌이 끝난 뒤에 치우는 걸 깜빡해서 계속 그곳에 있게 된, 그래서 아무도 사용하지 않을 것 같은 의자였다. 그는 그 의자에 앉아 헤드폰을 뒤집어쓴 채 책 읽는 걸 좋아했다. 실내가 크게 흔들리자, 그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는 비뚤어진 헤드폰을 고쳐 쓰고 고개를 들어 창밖을 보았다.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내려야 할 정류장이었다. 그는 헐레벌떡 일어나 가까스로 버스에서 내렸다. 버스가 문을 닫고 출발했다. 그는 한숨을 쉰 뒤 비몽사몽 집을 향해 걸었다. 집에 돌아와 가방을 푸는데 그 책이 보이지 않았다. 그는 겨드랑이에서 옆구리를 따라 땀이 흐르는 걸 느꼈다. 어쩌지. 너무 오래된 책이라 다시 구할 수도 없을 텐데. 그는 손톱을 물어뜯으며 고민하다 운수회사에 연락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전화를 받은 직원은 무심히 답했다. 비슷한 분실물이 들어오면 연락드릴게요. 꼭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이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연락을 기다리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늘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소중히 다뤘다. 도서관 책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타인의 흔적이 너무 싫었다. 절반이 뜯겨 나가 더 이상 책을 가를 수 없게 된 가름끈이라든지, 내지 하단 모서리를 삼각형으로 접었다 편 흔적이라든지, 안쪽에 납작하게 붙은 과자 부스러기인지 먼지인지 밥풀인지 그게 무엇인지 전혀 알 수 없는 어떤 것이라든지, 물에 젖었다가 말라 파도처럼 굽이치는 내지라든지, 하나도 인상적이지 않은 문장에 그어놓은 밑줄, 지극히 일상적인 단어에 쳐놓은 동그라미, 오탈자를 교정한 것으로 보이나 틀린 교정자, 그나마 연필을 썼으면 다행이지 볼펜을 쓰는 바람에 뒤쪽에 남은 자국이라든지. 이 다채롭게 끔찍한 타인의 흔적은 아무리 스크롤하고 스크롤해도 마르지 않는 SNS 피드처럼 계속해서 나열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물론 그도 도서관 책을 읽을 때 오염의 유혹을 느끼지 않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오염을 피하고자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예를 들어 책을 읽으면서 과자를 먹고 싶은데 도저히 못 참겠을 때는 젓가락을 사용했고, 과자를 입에 넣거나 씹는 순간엔 최소한 책으로부터 약 1미터 이상 고개를 떨어트렸다. 음료를 마시고 싶은데 도저히 참지 못할 때도 절대 차가운 건 마시지 않았다. 컵에 맺힌 물방울이 손에 묻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미지근한 음료 역시 마시는 순간엔 책으로부터 1미터 이상 고개를 떨어트렸다. 인상적인 구절을 기억하고 싶을 땐 쪽 번호를 메모했다 책을 다 읽은 뒤 적어둔 쪽들을 찾아 다시 읽고 문장을 받아적었다. 가끔은 쪽 번호만 메모하고 문장은 받아적지 않은 채 책을 반납하기도 했다. 그럴 때 그에게 남은 건 숫자뿐이었다. 이 숫자들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적어도 도서관 책에서 만날 수 있는 볼펜으로 그은 밑줄보다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는 꽤 오랜만에 그 책의 인상적인 문장을 적어둔 메모를 찾아 읽었다. 그는 못해도 1년에 한 번은 그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다. 그때마다 인상적인 구절을 받아적었다. 그럴 때면 자신이 그 책을 새로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지난 10여 년간 모은 문장이 이젠 책 전체의 문장보다 많았다. 그걸 다 읽고 나니 세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그중 문장 하나가 영 낯설었다. ‘그 병을 앓고 난 이후 더 이상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라는 문장이었다. 그 책의 어느 부분에 등장하는 것인지 전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는 그 책을 거의 외우고 있다시피 했다. 그런 그가 모르는 문장이 있다고? 말이 안 된다. 어쩌면 그가 실수로 다른 책의 문장을 적은 것일지도 몰랐다. 아니, 그럴 리 없어. 이 문장이 그 책의 문장인 건 확실해. 그는 오늘의 의식을, 그 책에서 ‘정말 그런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그는 정말로 그렇다고 믿었다’라는 문장을 찾는 것으로 정했다. 메모 속 문장에는 따로 쪽수를 기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책을 처음부터 샅샅이 읽어가며 찾아야 했다. 그는 그 책을 찾을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사실상 희박하다고 판단했다. 우선 분실 시 처리 방법을 알기 위해 도서관으로 향했다. 사서는 그에게 절판된 책을 분실할 경우 같은 책을 구매해 기증하거나 책의 정가를 현금으로 변상해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그는 가만히 앉아서 운수회사의 연락을 기다리는 것이 유일한 해결법이라는 생각에서 같은 책을 사서 기증하는 것도 또 다른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는 반납일까지 최선을 다해 온라인 중고 서점, 전국 각지의 헌책방 골목을 두루 찾아 수소문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책과 같은 책은 찾지 못했다. 결국 그는 그 책의 정가인 370원을 지급하는 것으로 분실 신고를 마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그렇게 해결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해결은커녕 이제 시작이었다. 죄책감이 그의 목을 조여온 것이다. 그는 그가 그토록 증오하던 도서관 책을 오염시키는 자들보다 훨씬 더 나쁜 짓을 저지른 셈이었다. 이제 그 도서관을 이용하는 사람 중 아무도 그 책을 읽을 수 없게 되었다. 다시는 절대로 결코 아무도 누구라도 그 책을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모두가 내게 손가락질하겠지. 저 사람 때문에 그 책을 읽을 수 없게 되었다고. 그런데 고작 370원으로 죗값을 치렀다고. 그게 벌이 될 수 있는 금액이냐고. 벌이 시대착오적이지 않냐고. 아니야. 손가락질도 할 수 없을 거야. 도서관에 그 책이 있었는지조차 알 수 없을 테니까. 그는 도서관의 외관을 보는 것도 괴로워 아예 도서관 방향으로는 서지도 않았다. 책도 읽지 않았다. 책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죄책감이 그의 등 뒤에 올라탔으니까. 굳이 책을 읽을 필요가 있을까? 책 말고도 볼 건 많아. 책 따위 안 봐도 그만이야. 그 책을 찾은 건 잃어버린 지 한 달이 흐른 뒤였다. 운수회사에서 비슷한 책이 분실물로 들어왔다고 연락해 왔다. 그는 운수회사로 찾아가 비타500 한 상자를 건네고 그 책을 받았다. 그는 즉시 도서관으로 발길을 옮겼다. 발걸음이 무거웠다. 이제 와서 찾았다고 하면 좋아할까? 이미 낡은 대로 낡은 책이었는데 한 달 새 더 헐어버린 것처럼 보였다. 저기, 분실했던 책을 찾아서요. 그래서 그, 가져왔는데요. 사서는 책의 바코드를 찍고 모니터를 들여다보더니 말했다. 이미 한 달 전에 분실 처리한 건이네요. 네, 맞아요. 그냥 가지세요. 네? 그냥 가지세요. 이미 처리한 건이라 재처리가 어려워서요. 그는 책을 가슴에 품고 고개를 숙여 정중하게 인사했다. 죄송합니다. 죽을 때까지 이 죄를 잊지 않겠습니다. 눈물이 차올랐다. 그는 매일 책을 만지기 시작했다. 글쎄 왜였을까? 죄를 잊지 않기 위해서? 세상에 용서를 빌기 위해서? 처음엔 어떤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에게 있어 그 의식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오로지 하루에 한 번 그 책을 만지는 행위 자체가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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