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첩과 나쓰메 소세키

글. 김종소리 사진. 조재무

선배가 지금 어디에서 뭘 하고 있는지 나는 모른다. 메시지를 보내봤지만, 연락이 되지 않는다. 선배가 친구를 만난다며 나간 것이 여섯 시, 지금 시각은 새벽 한 시 반이다. 아마도 선배는 어디선가 술을 마시고 있을 것이다. 선배는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 절대 핸드폰을 보지 않는다. 선배의 귀가가 늦을 때면 매번 이렇게 걱정하게 된다. 같이 가자고 할 걸 그랬나? 이제 와서 후회가 된다. 부질없는 짓이다. 선배에겐 아무 일도 없을 것이다. 쓸데없는 걱정이란 걸 알면서도 끊임없이 걱정한다. 늦게까지 하는 술집도 보통 새벽 두 시면 문을 닫을 테니 이제 곧 선배에게 전화가 올 것이다. 선배는 꼬인 혀를 열심히 펴면서 이제 출발한다고, 걱정하지 말고, 먼저 자라고 할 것이다. 나는 알겠다고 답하겠지만 자지 않고 선배를 기다릴 것이다. 그렇게 기다리다 보면 선배가 비닐봉지를 흔들며 집에 들어올 것이다. 우리는 테이블에 마주 보고 앉아 캔맥주를 작은 잔에 따라 마실 것이다. 선배는 여전히 꼬인 혀로 친구들과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풀어놓을 것이고, 그 이야기를 두 번, 세 번 반복할 것이다. 어쩌면 야채타임도 사 올지 모른다. 선배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과자가 야채타임이란 걸 항상 기억하고 있다. 야채타임은 케첩을 찍어 먹어야 제맛이다. 먹다 보면 동봉된 케첩만으로는 부족해서 추가해서 먹게 되는데⋯⋯ 집에 케첩이 남았던가? 냉장고 문을 연다. 거꾸로 서 있는 케첩이 보인다. 3분의 1 정도 남아 있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눈이 뻑뻑하다. 정신은 멀쩡한데 몸은 피곤한 모양이다. 인공눈물을 넣는다. 뻐근한 목을 천천히 한 바퀴 돌린다. 계속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으니 지겹다. 피드를 새로 고치고, 다시 새로 고치고, 끊임없이 새로 고칠 뿐이다. 영화라도 볼까 싶지만 딱히 영화를 볼 기분이 아니다. 지금부터 영화를 보면 대체 언제 자겠다는 걸까? 내일은 쉬는 날이니 몇 시에 자든 상관없지만 아무래도 지금 영화를 보는 건 아닌 것 같다. 짧게 드라마나 애니메이션을 볼까 싶기도 한데, 그것도 별로 내키지 않는다. 그냥 이렇게 멍하니 계속 생각을 이어가고 싶은데, 조금 졸린 것 같기도 하고, 잠이 생각을 잘라내려 한다. 담배나 한 대 피울까? 남은 담배가 있던가? 생각해 보니 어느새 담배를 끊은 지 1년이 다 되어간다. 지난 1년 동안 담배를 한 대도 피우지 않았다. 이쯤 되니 가끔 생각날 때 한두 대쯤은 피워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몇 개비 남은 담배를 어딘가 두었던 것 같은데 위치가 기억나지 않는다. 편의점에 가서 한 갑 사 올까? 아니다, 귀찮다. 서랍이란 서랍을 다 열어봤지만, 담배는 보이지 않는다. 문득 생각이 나 주방 후드장을 열어본다. 여기에 있었다. 담뱃갑을 열어보니 세 개비와 라이터가 들어있다. 웃음이 난다. 왜 여기에 두었을까?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담배를 꺼내 냄새를 맡는다. 오랜만이다. 현관문을 조용히 닫고 계단을 올라 옥상으로 나간다. 생각보다 공기가 차다. 팔에 소름이 돋는다. 담배에 불을 붙인다. 연기를 마신다. 목이 살짝 가렵다. 연기를 내뿜는다. 어지럽다. 오랜만이다. 바로 위층이 옥상이란 건 이 집의 장점 중 하나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옥상에 올라오지 않는다. 옥상은 우리만의 공간이다. 이제 확실히 잠이 깼다. 깜깜한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얼마 만에 보는 밤하늘인지 모르겠다. 담배를 피울 때는 매일 같이 보던 풍경이었다. 달을 보니 나쓰메 소세키가 ‘I love you’를 ‘달이 아름답네요’라고 번역했다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아름다운 번역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론 너무 심한 의역이 아닌가 싶다. 어디선가 나쓰메 소세키의 번역이 아니라는 말도 본 것 같다. 궁금해서 AI에게 묻는다. 나쓰메 소세키가 ‘아이 러브 유’를 ‘달이 아름답네요’로 번역한 게 사실이야? 결론부터 말하면, “나쓰메 소세키가 영어의 ‘I love you’를 ‘달이 아름답네요(月が綺麗ですね)’라고 번역했다”라는 이야기는 사실이라고 볼만한 직접적인 증거가 없습니다. 오히려 현재 확인되는 자료를 따라가 보면 후대에 만들어진 일화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다만 아주 재미있는 반전이 있습니다. 소세키가 실제로 ‘I love you’라는 표현에 대해 메모를 남긴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완전히 무에서 만들어진 이야기는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소세키의 영문학 관련 메모에는 조지 메러디스의 소설의 한 구절을 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이 적은 기록이 있습니다. “이 ‘I love you’는 일본에는 없는 표현이다.” 즉, 소세키가 ‘I love you’라는 표현을 일본어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고민했다는 건 사실이라고 볼 근거가 있습니다. 하지만 소세키는 여기서 ‘달이 아름답네요’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 메모 어디에도 ‘달이 아름답네요(月が綺麗ですね)’라는 말은 나오지 않습니다. AI는 이후에도 이런저런 말을 길게 늘어놓았다. 실제로 나쓰메 소세키가 ‘I love you’를 ‘달이 아름답네요’로 번역하진 않은 것 같다. 아니더라도 나는 나쓰메 소세키가 했다고 믿기로 한다. 그게 더 마음에 드니까. 전화가 온다. 모르는 번호다. 이 시간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온다고? 받는다. 모르는 목소리다. 경찰입니다. 경찰은 내게 선배의 이름을 대며 보호자냐고 묻는다. 나는 선배의 보호자는 아니지만 같이 사는 사람이라고 답한다. 경찰은 교통사고가 났다며 선배가 병원으로 이송되었다고 한다. 나는 전화를 끊고 담배를 끈 뒤 택시를 부른다. 새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인다. 매번 똑같은 상황을 상상한다. 어째서 교통사고일까? 어차피 상상인데 매번 다른 상황을 떠올릴 수도 있지 않을까? 술을 마시다 말고 급성 알코올 중독으로 쓰러진다거나, 비틀거리며 걷다가 넘어져 머리가 깨진다거나, 폭탄 테러에 휘말린다거나 말이다. 불길한 상상은 이쯤에서 그만두자. 메시지를 한 번 더 보내볼까? 보내봤자 선배는 보지 않을 것이다. 선배는 옛날 사람도 아니면서 왜 이렇게 핸드폰을 안 보는지 모르겠다. 옛날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약속을 정했겠지. 두 시에 역 앞 시계탑에서 보자. 그는 두 시가 되어도 오지 않는다. 기다린다. 한 시간이 넘도록 기다려도 그는 오지 않는다. 근처 공중전화를 찾아 전화를 건다.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는다. 이미 집에서 나온 모양이다. 차가 막히나 보지. 다시 시계탑으로 가서 기다린다. 두 시간, 세 시간이 넘도록 그는 오지 않는다. 교통사고가 난 건 아닐까? 이 상상에서까지 교통사고 생각을 한다고? 레퍼토리가 너무 한정적이다. 옛날 사람들은 이렇게 늘 걱정하며 살았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러려니 하면서 속 편히 기다렸을지도 모른다. 연락 없는 기다림이 당연한 일이었을 테니까. 그래, 그러려니 하자. 이제 두 시니까, 선배에게 곧 전화가 올 것이다. 어제 마시다 남은 와인이나 마시면서 기다리자. 담배를 끄고 집으로 내려간다. 냉장고에서 와인을 꺼내 코르크 마개를 뺀다. 안주로 먹을 만한 게 있는지 살핀다. 피클이 눈에 들어온다. 침이 고인다. 화이트 와인과 조합이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잔을 두 개 꺼낸다. 선배와 캔맥주를 마실 때면 늘 사용하는 이다. 일본 맥주 브랜드 기린의 로고가 흰색으로 인쇄되어 있다. 선배가 오기 전까지 이 잔으로 와인을 마시다, 선배가 오면 물로만 대충 헹궈서 맥주를 마시면 되겠다. 와인을 한 모금 마신다. 맛있다. 젓가락으로 피클을 집어 먹는다. 좋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나쁘지도 않다. 핸드폰 액정을 터치해 시간을 본다. 두 시가 넘었다. 이쯤이면 내가 먼저 전화를 해 봐도 되겠다 싶다. 전원이 꺼져있어 연결이 되지 않아⋯⋯ 핸드폰을 테이블 위에 놓는다. 앞 범퍼가 찌그러지고 헤드라이트가 깨진 차의 모습이 떠오른다. 가드레일을 따라 차가 미끄러진다. 불꽃에 휩싸인다. 핸드폰이 부서지면 보호자에게 어떻게 연락할 수 있지? 심지어 나는 선배의 보호자도 아니다. 단순히 배터리가 다 된 것일지도 모른다. 선배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볼까? 유난이다. 별일 없을 것이다. 그래도 걱정이 된다. 전화를 건다. 여보세요. 혹시 선배랑 같이 계세요? 네, 바꿔주세요. 고맙습니다. 조심히 들어와. 올 때 맥주 좀 사다 줘. 전화를 끊는다. 다행이다. 택시를 불렀다니까 곧 오겠다. 이제 마음 편히 유튜브를 보면서 기다리면 되겠다. 고양이 AI 영상이나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