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질과 범인
글. 김종소리
사진. 조재무
침대에 누운 지 얼마나 되었을까? 모르겠다. 나는 잃어버린 잠을 찾기 위해 몸속 구석구석을 샅샅이 뒤진다. 잠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혹시 누군가 내 잠을 훔쳐 간 건 아닐까? 침대 주변을 살펴보면 범인이 남기고 간 흔적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지금 눈을 뜰 수 없다. 내일 회사에 출근하기 위해선 오늘 밤 안에 에너지를 충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밤새도록 잠들지 못하더라도 나는 밧줄로 포박당한 인질처럼 꼼짝 없이 누워 있을 것이다. 그래야 내일 움직일 힘을 조금이라도 얻을 수 있을 테니까. 근데 정말로 누군가가 내 잠을 훔쳐 간 걸까? 왜? 내가 뭘 잘못했다고? 세상의 수많은 인간 중에 하필이면 나를 타깃으로 삼은 이유가 뭐지? 내가 누군가에게 원한을 살 만한 일을 한 적이 있던가? 글쎄⋯⋯ 바로 떠오르는 건 없다. 하지만 분명 있을 것이다. 나라는 인간은 매일 같이 타인에게 폐를 끼치며 살아가고 있으니까. 내가 여기저기에 끼친 폐 중 일부를 누군가가 차곡차곡 모으다 결국 상처를 받았고 급기야 그 원한을 풀기 위해 우리 집에 몰래 들어와 복수를 감행했다. 얼마든지 가능한 이야기다. 하지만 복수란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계획 세워야지, 준비해야지, 시간 내야지⋯⋯ 직접 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무척 귀찮을 일임은 분명하다. 그러니 범인은 부지런한 사람이어야 한다. 생각해 보자. 주변에 부지런한 사람이 있던가? 떠오르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 유유상종이니 내 곁에 부지런한 사람이 있을 리 만무하다. 어쩌면 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이 범인일지도 모른다. 인간은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아무나 마구잡이로 죽이기도 하니까. 이런 경우엔 범인을 어떻게 특정할 수 있을까? 작은 것이라도 좋으니 단서가 필요하다. 하지만 나는 눈을 떠서는 안 된다. 단서를 찾는 대신 생각의 방향을 전환해 보자. 범인에 대한 새로운 힌트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잠은 형상이 없다. 인간은 형상이 있다. 고로 같은 세계의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범인은 인간이 아니라 귀신일지도 모른다. 귀신은 형상이 없으니까. 어쩌면 인간이 아닌 귀신일지도 모른다. 인간이 아닌 것도 귀신이 될 수 있나? “일본은 만물에 신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한대.”선배의 말대로라면 살아있는 닭에게도 신이 깃들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죽은 닭이 귀신이 될 수도 있을 것이고. 한 달 전, 병아리 한 마리가 알을 깨고 세상에 나왔다. 병아리는 즉시 사육 시설로 옮겨져, 손바닥만 한 공간을 할당받고 다른 친구들과 깃털을 맞댄 채 살기 시작했다. 시설은 24시간 내내 불이 꺼지지 않았고, 병아리는 잠들지 못한 채 계속해서 사료를 먹고 또 먹었다. 그렇게 한 달 남짓의 시간이 지나자, 누군가 병아리의 발목을 낚아채 케이지에 던져넣었다. 병아리에겐 놀랄 시간도 주어지지 않았다. 트럭에 실려 도계장으로 옮겨지는 동안 아직 병아리지만 이제는 닭이라고 불릴 이 생명체는 케이지에 함께 쑤셔 넣어진 다른 친구들 틈에서 질식할 뻔했지만, 부리를 바깥으로 내밀어 간신히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도계장에 도착한 닭은 컨베이어 벨트로 다시 한번 던져졌다. 갑작스러운 통증에 닭은 온몸을 비틀며 푸드덕댔다. 가슴인지 다리인지 목인지, 어딘가에서 강한 통증을 느꼈는데 그게 어디인지 감지하기도 전에 또 발목을 잡혔고 이번엔 쇠고리에 거꾸로 매달린 채 앞으로 나아갔다. 전기가 흐르는 수조에 담겨 기절했고, 뜨거운 물 속을 지나며 온몸에 난 털을 모조리 뜯겼으며, 이어서 목이 잘렸다. 그렇게 닭은 주마등을 볼 시간조차 없이 한 달 남짓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그래도 닭은 운이 좋은 편이었다. 전기 수조를 지나며 기절하지 못한 몇몇 친구들은 뜨거운 물에 담긴 채 털 한 올 한 올이 뽑히는 고통을, 이어서 목이 잘려 나간 뒤 온몸의 피가 빠져나가 몸이 서늘하게 식어가는 걸 느껴야 했으니까. 이제 귀신이 된 닭은 자신의 육체에서 내장이 적출되는 걸 보며 부리를 꽉 깨물었다. 나를 먹는 녀석이 누군지 확인하기 전까지는 죽어도 눈을 감지 못하겠다. 닭의 귀신은 냉장차에 실려 이동하는 자신의 육체를 따라 움직였다. 도착한 곳은 치킨집이었다. 그곳에서 그의 육체는 커다란 칼로 다리, 가슴, 날개 등 부위 별로 댕강댕강 잘린 뒤, 염지 후 튀김옷을 입고 뜨거운 기름에 들어갔다 나와 종이 상자에 담겼다. 그리고 우리 집으로 배달되었다. 물론 나는 치킨을 먹기 전, 육체를 제공해 준 닭을 포함해 내 앞에 치킨이 놓이기까지 일련의 모든 과정에 참여한 이들을 떠올리며 잘 먹겠습니다, 감사의 인사를 했다. 하지만 닭의 귀신은 그 정도의 인사로는 나를 용서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잘 먹겠습니다? 웃기고 있네. 생각해 보면 내가 닭이었어도 그깟 말 한마디로는 절대로 나를 용서할 수 없었을 것이다. 고작 내 한 끼 식사를 위해 닭은 목숨을 잃었다. 심지어 나는 손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그저 씹고 뜯고 맛보기만 했다. 닭의 귀신은 지금도 나를 내려다보며 저주를 퍼붓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 언젠가 환생해 네 놈의 내장을 긁어내고, 몸을 조각내어 튀겨 먹겠다. 근데 모를 수밖에 없긴 하다. 내겐 귀신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능력이 없으니까. “죽은 사람과 대화할 수 있다면 누구와 대화하고 싶어?”“오래 전에 죽은 사람도 가능해?”“응. 누구든 돼.”“외국인도?”“외국인도 되긴 하는데 대화가 안 되지 않을까? 선배, 영어 못하잖아.”내게 귀신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해도 닭과는 대화가 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닭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니까. 닭이 귀신이 되어 인간의 말을 터득했다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문득 닭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닭은 내가 가장 많이 섭취하는 동물이다. 심지어 매일 허락도 없이 그들의 알까지 먹고 있다.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에 달걀만큼은 동물복지 인증을 받은 것으로 먹으려고 한다. 그것도 가능하면 난각번호의 사육환경 번호가 1번인 것으로. 그런데 그게 참 쉽지가 않다. 동네 마트에 가보면 사육환경 번호가 2번인 달걀만 있을 때가 많다. 2번 사육 시설은 케이지가 없을 뿐이지 실상은 기존의 사육 시설 환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그래봐야 먹는 것부터가 미안한 짓인데 난각번호가 1번이든 2번이든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그래도 나름대로 동물권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하면서 먹으려고 한다. “그렇게 죄책감이 들면 작은 목표를 세워서 그것부터 해보면 어때? 다른 건 몰라도 치킨은 안 먹겠다거나.”선배는 실행 가능한 제안을 했다. “치킨은 포기할 수가 없어.”“그럼, 죄책감은 어쩔 수 없는 거 아니야?”그래도 예전만큼 치킨을 자주 먹지는 않는다. 한 달에 한 번 먹을까 말까다. 달걀은 자주 먹긴 하지만⋯⋯. 페스코부터 시작해 볼까? 해산물은 먹을 수 있으니 버틸 만하지 않을까? 하지만 알고 있다. 해산물이라고 해서 닭보다 더 나은 환경에서 양식하는 건 아니라는 것을. 인간은 양식 새우의 눈을 자른다. 눈 뒤 쪽에서 번식 억제 호르몬이 나온다는 이유 때문에. 인간은 더 많은 생산, 더 많은 수입을 위해 암컷 새우에게 더 많은 번식을 강요한다. 양식 뿐이랴. 회는 더 한다. 산 채로 비늘을 벗기고 칼로 살을 베어낸다. 생선은 통증을 느낀다, 느끼지 않는다, 말이 많은 것 같은데 근래엔 생선도 통증을 느낄 가능성이 더 높다고 판단한다. 통증을 느끼는 것과 그것을 고통으로 느끼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긴 한데⋯⋯ 이제 그만하자.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쉰다. 이렇게 계속 누워 있어 봐야 잃어버린 잠을 찾기는 어려울 것 같다. 오늘 새벽, 나는 천변을 달렸다. 이미 새벽부터 몸을 피곤하게 만든 셈이다. 하루 종일 커피는 한 잔밖에 마시지 않았다. 치킨을 먹으며 맥주를 두 캔 마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찾고 또 찾아봐도 잠은 보이지 않는다. 닭이 훔쳤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 잠을 돌려받기 위해선 그를 달래야 한다. 귀신과 어떻게 대화할 수 있지? 귀신과 대화하는 법, 귀신과 대화하는 법, 귀신과⋯⋯ 제사 밖에 떠오르질 않는다. 그래, 제사라도 지내야 한다. 그렇지만 지금 눈을 뜨는 게 현명한 판단일까? 현명? 지금 그딴 걸 따질 때가 아니다. 이대로 잠을 돌려받지 못하면 앞으로 평생 잠들지 못할지도 모른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냉장고에서 먹다 남은 치킨을 꺼낸다. 테이블 중앙에 접시를 놓고 그 위에 치킨을 한 조각 한 조각, 마치 소원을 빌며 돌탑 위에 돌멩이를 얹듯 정성스레 쌓아 올린다. 싱크대에 둔 유리컵을 설거지하고 물기를 닦은 뒤 치킨 앞에 놓는다. 냉장고에서 캔맥주를 꺼낸다. 유리컵에 맥주를 따른다. 두 손을 모아 합장하고 치킨을 향해 인사한다. 닭이시여, 제 피와 살이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무례를 범한 이 인간을 용서해 주시옵소서. 제 삶이 이어질 수 있도록 당신의 생명을 내어주신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리옵니다. 짧은 당신의 생에 경의를 표합니다. 앞으로는 당신이 겪은 그 끔찍한 시스템에 두 번 다시 일조하지 않겠습니다. 제 남은 생에 ‘치킨’이라는 단어는 사라질 것입니다. 부디 용서해 주시옵소서. 그리고 크나큰 아량을 베풀어 달걀 섭취만큼은 눈감아 주시옵소서. 큰절을 두 번 올린다. 이쯤이면 되었을까? 의자에 앉아 컵에 따라놓은 맥주를 마신다. 탄산 가득한 차가운 맥주가 목을 타고 몸속으로 들어간다. 치킨을 양손으로 공손히 들어 한 입 베어 문다. 눅눅해진 튀김옷과 차가운 살을 씹어 삼킨다. 내 인생 마지막 치킨이 눅눅한 치킨이라니 아쉬울 따름이다. 살을 발라 먹고 남은 뼈를 접시 한쪽에 놓는다. 순살 반 마리만 사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뼈 한 마리를 사버렸다. 그 덕에 반 마리가 남았고, 이렇게 닭의 귀신을 위한 식을 올릴 수 있게 되었다. 남은 치킨과 함께 맥주 한 캔을 비우고 다시 침대에 눕는다. 눈을 감는다. 잠을 찾아 몸속 구석구석을 샅샅이 뒤져본다. 여전히 잠은 보이지 않는다. 사실 나는 처음부터 범인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범인은 닭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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