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와 강릉

글. 김종소리 사진. 조재무

“알겠지? 선크림은 필수야. 그 배우 누구지? 호주 사람.”“호주 사람?”“엑스맨.”“아, 휴 잭맨?”“응. 휴 잭맨이 피부암에 걸렸었대. 다행히 완치되긴 했는데, 그 이후로 선크림 홍보대사인 것처럼 맨날 선크림 얘기를 한대. 선크림만 발랐으면 괜찮았을 거라면서. 귀찮아도 발라야 돼. 집에 있을 때도 바르는 게 좋다던데, 그것까진 됐고. 밖에 나갈 때만이라도 발라. 알겠지?”“응.”“기무라 타쿠야 알지?”“아니.”“기무라 타쿠야 몰라? 스맙 몰라?”“잘 모르겠는데.”롱바케 보지 않았나?”“아, 거기 주인공? 그 잘생긴 사람?”“응. 혹시 그 사람 최근 사진 봤어?”“아니.”“폭삭 늙었더라고. 그게 다 선크림을 안 발라서 그렇대. 서핑을 좋아해서 허구한 날 서핑을 하는데 서핑할 때 선크림을 안 바른 거야. 한 번 찾아봐. 놀랄걸?”“응.”“게다가 나는 까만 게 싫어. 뭔가 지저분해 보인다고 해야 하나? 특히 목뒤만 까맣게 탄 거. 그게 제일 싫어.”“응.”“원래 햇빛에 노출되는 부분은 다 발라야 된대.”“응.”“그것까진 바라지도 않아. 그냥 얼굴이랑 목만이라도 발라. 알겠지?”“응.”스킨 바르는 것도 귀찮아 죽겠는데 선크림은 무슨 얼어 죽을 놈의 선크림이란 말인가. 밖에 잘 나가지도 않는데 피부암에 노화에⋯⋯ 누가 들으면 선크림이 아니라 불로초 얘기를 하는 줄 알 것이다.“자.”선배가 뚜껑을 열고 선크림을 내 쪽으로 내밀었다. 내 손 위로 하얀 액체가 한 방울씩 똑똑 떨어지더니 이윽고 손바닥을 다 채우고 넘쳐흘러 바닥에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한 방울 두 방울⋯⋯ 방 안에 선크림이 점점 차올랐다. 나는 출렁이는 선크림을 따라 헤엄쳐 밖으로 나왔다. 눈부신 햇빛이 강렬했지만, 자외선을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우린 선크림에 몸을 담근 상태였으니까.“발리에 갔을 때도 잘 바를 걸 그랬어. 그때 탄 게 아직도 다 안 돌아온 것 같아.”그놈의 발리⋯⋯ 선배는 바다를 떠올리면 늘 발리 이야기를 한다. 그렇게 좋았다고. 나도 같이 갔으면 좋았을 텐데.“이 정도면 괜찮지? 선크림에 온몸을 다 담갔으니까.”나는 선크림 위로 몸을 띄워 누우며 말했다. “응. 이 정도면 걱정 없지.”“자외선 걱정 없이 햇빛을 받으니까 좋긴 좋다.”“그치? 내 말대로만 하면 자다가도 떡이 나올 거야.”나는 떡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중에서도 특히 백설기가 싫은데 그 푸석푸석한 식감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태양을 빤히 쳐다보다 눈을 감았다. 밝은 어둠 속에 동그란 빛의 자국이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근데 발리 갔던 게 언제야?”“한 3년은 된 것 같은데?”“그때도 휴 잭맨은 선크림 홍보대사였어?”“아마 그럴걸?”“그때도 선크림 발랐어?”“아니. 그때 탄 게 아직도 안 돌아온 것 같다니까. 그래서 바르라는 거야.”“응. 알겠어. 앞으로 잘 바를게. 대신 발리 이야기는 이제 하지 마.”“왜?”눈을 떴다. 고개를 돌리니 의자에 앉아 있는 선배가 보였다.“이제 일어났어?”“선배. 우리 발리 가자.”“발리? 갑자기?”“응.”“그럴 돈이 어딨어.”“그럼, 강릉 갈래?”“자다가 갑자기 무슨 소리야. 여행 가는 꿈이라도 꿨어?”“응. 그리고 앞으로 발리 이야기는 하지 마.”“왜?”“듣기 싫으니까.”선배가 침대로 와 내 위로 얼굴을 들이밀었다.“무슨 꿈을 꿨길래 이래?”“선배가 선크림 홍보대사가 됐어. 발리에 같이 갔던 그 사람이 피부암에 걸렸다고 하더라고. 그러더니 나보고 그렇게 되기 싫으면 선크림을 바르라고 강요하는 거야. 그래서 온몸에 선크림을 바르고 선배랑 같이 바다에 가서 수영을 했어. 거기서 서핑하는 휴 잭맨을 만나서 인사를 했고.”“집에 있을 때도 바르는 게 좋다던데, 그것까진 됐고. 밖에 나갈 때만이라도 발라. 알겠지?”“응.”“기무라 타쿠야 알지?”“아니.”“기무라 타쿠야 몰라? 스맙 몰라?”“잘 모르겠는데.”롱바케 보지 않았나?”“아, 거기 주인공? 그 잘생긴 사람?”“응. 혹시 그 사람 최근 사진 봤어?”“아니.”“폭삭 늙었더라고. 그게 다 선크림을 안 발라서 그렇대. 서핑을 좋아해서 허구한 날 서핑을 하는데 서핑할 때 선크림을 안 바른 거야. 한 번 찾아봐. 놀랄걸?”“응.”“게다가 나는 까만 게 싫어. 뭔가 지저분해 보인다고 해야 하나? 특히 목 뒤만 까맣게 탄 거. 그게 제일 싫어.”“응.”“원래 햇빛에 노출되는 부분은 다 발라야 된대.”“응.”“그것까진 바라지도 않아. 그냥 얼굴이랑 목만이라도 발라. 알겠지?”“응. 두 번 들으니까 지겨워 죽겠어. 잘 바를 테니까 강릉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