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KJ와 노이즈 캔슬링

글. 김종소리 사진. 조재무

평일 낮의 한산한 지하철. 나는 좌석에 앉아 FKJ의 피아노 앨범을 듣고 있었다. FKJ가 뭐의 약자였더라? FKJ가 무언가의 약자라는 것은 분명하게 기억하는데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가 늘 생각나지 않는다. 매번 상관도 없는 존 F. 케네디만 떠오른다. 나는 구글에 ‘FKJ’를 검색해 보았다.French Kiwi Juice 또는 약어 FKJ로 알려진 Vincent Fenton은 투르 시 출신의 프랑스 멀티 악기 연주자, 가수 및 음악가입니다.그래. ‘FKJ’는 ‘프렌치 키위 주스(French Kiwi Juice)’의 약자였다.지하철이 지상으로 나오자 창으로 햇빛이 들었다. FKJ의 피아노와 따스한 햇살이 잘 어울렸다. ‘지하철’이라는 이름은 아마도 운행 구역 대부분이 지하이기 때문에 붙은 이름일 것이다. 하지만 지하철은 지상을 달리기도 한다. 그렇다면 지상을 달리고 있는 지하철은 지하철이 아닌 것 아닌가? 지상철이라 불러야 하지 않나? 하지만 ‘지하철’이 입에 더 잘 붙는다. 집에 뭐 타고 갈 거야? 지하철. 그렇지 않나?순간, 피아노 음과 음 사이로 “꺾였다니까”라는 말이 비집고 들어왔다. 그리곤 이어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옆에 앉아있던 사람이 통화를 하고 있는 건 알고 있었다. 신경이 쓰이긴 했지만 신이 주신 선물, 노이즈 캔슬링을 전개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러려니 했다. 에이 설마. 노이즈를 캔슬링하는 중인데 목소리가 들리겠어? 아무리 옆자리지만. 그랬는데 그 설마의 일이 있어난 것이다. 상당히 충격적이어서 끔찍했다. 대체 얼마나 큰 소리로 통화하고 있는 거야?불현듯 얼마 전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 떠올랐다. 한참 재밌게 읽고 있었는데 이어지는 글자 아래로 하얀 점이 보였다. 이게 뭐지, 하고 손가락으로 만졌는데 작은 뭔가가 느껴졌다. 손톱으로 긁으니 톡 떨어졌다. 나는 경악했다. 설마 누군가가 먹던 과자 부스러기인가? 그것이 책에 떨어졌고 이를 눈치채지 못한 누군가는 다음 페이지로 책장을 넘겼고 그렇게 눌린 부스러기는 그대로 눌어붙어 결국 내 손톱에 의해 떨어지게 된 건가? 손가락부터 시작해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과자가 아니라 빵이었을지도 모른다. 무엇이었든 끔찍하다는 점은 동일하다.만약 당신이 ‘그럴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니까’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지하철에서 내 옆에 앉았던 사람이 노인일 것이라고 추측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노인이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 충격적이며 끔찍했던 것이다. 예상 밖의 불쾌함은 예상을 뛰어넘었기 때문에 예상 밖에 있는 것이니까. 그 사람이 노인일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면 미안합니다. 나는 지하철에서 큰소리로 통화하는 사람은 노인일 것이라는 지독한 편견을 가지고 있고 이것이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편견일 것이라는 가혹한 편견을 지니고 있습니다.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저히 그대로 앉아 있을 수 없었다. FKJ는 계속 피아노를 치고 있었고, 햇살은 따스했으니까. 다른 칸으로 이동하는데 문득 뭐가 꺾였길래 웃긴 걸까 궁금했다. 꺾인 건 노이즈 캔슬링에 대한 나의 믿음이지. 아니다. 노이즈 캔슬링에겐 잘못이 없다. 믿음을 꺾어선 안 된다. 믿음이 꺾이는 순간 관계는 틀어지기 시작하니까.이럴 땐 남 탓을 하는 게 제일이다. 옆자리 사람이 잘못했다. 대화는 조용히. 대중교통 이용의 기본 아닌가. 백팩을 앞으로 메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자책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내가 듣고 있던 건 FKJ의 피아노 앨범이었다. 내 잘못이다. 아무리 한산하다 하더라도 지하철이라 불리는 하지만 지금은 지상철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할 수 있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그렇게 조용한 음악을 듣다니. 나의 안일함이 부른 참사다.근데 대체 뭐가 꺾인 걸까?